나의 레퍼런스 자료
시즌 기획 회의를 하면 다들 자료를 한 아름씩 들고 온다. 해외 컬렉션, SNS에서 화제가 된 룩, 올해의 키칼라 같은 것들. 나도 그걸 열심히 본다. 그런데 스무 해 가까이 유아동복을 만들면서 알게 된 건, 내가 만든 옷 중 제일 정확했던 레퍼런스는 나의 핸드폰 화면이나 컴퓨터 속 화면이 아니라 우리 집, 나의 아이들에게서 나왔다는 거다.
목이 답답하다던 아이
아들이 대여섯 살쯤이었다. 그해 겨울, 등원 시간은 다가오는데 아이가 목이 늘어난 폴라티를 죽어도 안 입겠다고 현관 바닥에 드러누웠다.
"답답해, 답답하단 말이야."
목을 붙잡고 몸부림치는 걸 보다가 나는 옷을 갈아입히던 손을 멈췄다. 문득 작업 중이던 시안의 넥라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. '그 목둘레도… 딱 저 정도였지.' 그날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 샘플을 다시 꺼냈다. 목둘레 여유분을 늘리고 여밈을 똑딱단추로 바꿨다. 그날 아침의 그 드러눕기가 그 시즌 상품의 진짜 수정 사유였다. 회의 때는 "핏을 다시 검토했다"고 말했지만, 정확히는 현관 바닥에서 배운 거였다.
이런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,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 아예 일하는 방식을 바꿨다. 유치원 들어갈 무렵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전환하고, 등하원을 직접 하기로 한 거다. 그게 벌써 10년째다. 남들은 왜 그 좋은 자리를 두고 나왔냐 했지만,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이 드러눕기 같은 장면들을 다 놓쳤을 거다.
"옷걸이에 걸렸을 때 예쁜 것과,
아이가 입고 뛸 때 편한 것은 다른 문제다."
옷걸이와 아이는 다르게 입는다
옷걸이에 걸렸을 때 예쁜 것과, 아이가 그 옷을 입고 뛰고 구르고 미끄럼틀을 탈 때 편한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. 이건 매장에서 배운 게 아니라 놀이터에서 배웠다. 내가 그린 옷을 입은 아이가 그네를 타다 한 번도 옷 때문에 멈칫하지 않을 때, 나는 그제야 그 옷이 완성됐다는 걸 알았다. 반대로 아무리 잘 나온 시안이라도 아이가 소매를 자꾸 잡아당기면, 좋은 원단을 썼든 말든 그건 아직 미완성이었다.
"이 옷 정말 잘 입혔어요"
그맘때 지인이 지나가듯 한 말이 오래 남았다. "이 옷 정말 잘 입혔어요. 애가 하도 편해해서 매일 이것만 입으려고 해." 판매가 잘됐다는 말보다 그 말이 훨씬 컸다. 누군가의 바쁜 아침을 조금 덜어줬다는 뜻이었으니까. 나도 매일 그 전쟁 같은 등원을 치르던 사람이라, 그 한마디가 유독 깊이 들렸다.
아이들은 이제 중학생이 됐다. 폴라티로 드러눕던 아들도 이제 제가 알아서 교복을 입고 나온다. 그래도 나는 여전히 아침마다 두 아이를 차에 태워 학교에 내려준다. 그 길 위에서 나는 아직도 다음 시즌의 답을 줍는다. 오늘도 어느 집 현관에선 또 다른 아이가 목이 답답하다며 드러눕고 있을 테고, 그 드러눕기 속에 분명 무언가 숨어 있을 테니까. 레퍼런스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, 늘 그 현관과 그 길 위에 있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