스무 해를 하고도

아동복을 만든 지 스무 해가 넘었다. 그런데도 새 시즌 첫 시안 앞에 앉으면 여전히 손이 멈칫한다. 이쯤 되면 뭐든 척척 나올 법도 한데, 아니다. 오히려 해가 갈수록 "이게 맞나" 하고 더 오래 들여다본다.

한동안은 그게 부끄러웠다. 경력이 무색하게 나는 왜 아직도 헤맬까.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르게 생각한다. 확신이 없다는 건 아직도 아이들이 궁금하다는 뜻이니까. 오히려 그 궁금함이 사라지는 순간이 더 무섭다.

지퍼 하나에 매달리던 아침

지금 아들은 중3, 딸은 중1이다.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, 나는 다니던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했다. 이 시기만큼은 내 손으로 키우고 싶어서, 일하는 시간을 아이들 시간표에 맞춰 다시 짰다. 그렇게 등하원 라이드를 직접 한 게 벌써 10년째다. 이제 둘 다 제 옷은 제가 고르고, 내가 만든 옷을 슬쩍 내밀면 "엄마, 이건 좀…" 하며 돌려주는 나이가 됐지만, 운전대를 잡고 학교 앞에 설 때면 그 애들이 아주 작았을 때가 불쑥불쑥 떠오른다.

아들이 네 살쯤이었나. 아침마다 외투 지퍼를 붙잡고 혼자 씨름을 했다. 도와주려고 손을 뻗으면 기어코 밀어냈다.

"내가! 내가 할 거야."

지퍼 끝은 자꾸 어긋나고 시간은 없고, 나는 가방을 든 채 현관에 서서 그 작은 손끝을 한참 봤다.

재봉틀 바늘 클로즈업
→ 아이를 보내고 돌아와, 아우터 시안을 다시 꺼냈다.

그날 아이를 보내고 작업 책상에 앉자마자, 하던 아우터 시안을 다시 꺼냈다. 지퍼 손잡이를 크게 키우고, 손끝이 잘 걸리도록 고리 모양을 바꿨다. 별것 아닌 수정이었는데 그게 그 시즌 아우터의 진짜 이유가 됐다. 회의 때는 "사용성을 고려했다"고 그럴듯하게 말했지만, 솔직히는 그냥 그 아침에 배운 거였다.

“아이가 혼자 해내고 싶어 하는 마음,
그걸 옷이 방해하면 안 된다는 것.”

다시, 그 시간을 꺼내며

그 애들은 이제 지퍼쯤 눈 감고도 잠근다. 대신 사춘기라는, 지퍼보다 훨씬 어려운 걸 매일 잠갔다 풀었다 한다.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 작았던 시절의 장면들을 자주 꺼낸다. 트렌드 자료를 아무리 뒤져도, 그때 현관에서 본 것만큼 정확한 답을 주는 건 드물기 때문이다. 좋은 자리를 두고 나와 아이 곁을 택한 그 시간이, 지나고 보니 내 일에도 가장 큰 자산이 됐다.

아이디어는 그렇게 온다. 거창한 데서 오지 않는다. 지나간 어느 아침, 작은 손이 지퍼에 매달리던 그 몇 초 같은 데 조용히 숨어 있다가, 몇 년이 지나서야 슬그머니 손을 든다.

오늘도 그 손끝을 생각하며

여전히 확신은 없다. 다만 이제는 그 없음이 밉지 않다.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지퍼를 잠그는 아침을 상상하며 선을 긋는다. 그 아이가 "내가 했어!" 하고 웃을 수 있다면, 그날의 시안은 그걸로 됐다.

hhee 등굣길 라이드를 마치고 돌아와